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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은 왜 눈밝은 사람만 찾아갈까? – 신청주의의 명암과 정보 불평등

휴인 2025. 10. 6. 20:56

 

“나랏돈은 눈 밝은 사람이 찾아 먹는다.” 흔히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이 말에는, 사실 우리 사회 행정 시스템의 민낯이 숨어 있습니다. 각종 정부 지원금이나 복지 혜택은 분명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행정은 기본적으로 ‘신청주의’ 원칙을 따릅니다. 본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격이 되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정보를 잘 알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디지털 소외계층이나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본래 받을 수 있었던 권리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신청주의는 왜 유지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시스템은 정말 지금 시대에 맞는 방식일까요?

 

신청주의, 왜 계속되는 걸까?

처음부터 신청주의가 나쁜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허위 신청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자격 요건을 갖춘 국민이 직접 신청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필요 없는 곳에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제한된 재원을 보다 정밀하게 필요한 곳에 투입할 수 있죠.

 

또 하나의 이유는 행정 효율입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별과 심사를 진행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신청주의는 그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신청하라’는 구조는 행정 처리의 편의성을 높이는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전제하는 조건은 “누구나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혜택은 알고 있는 사람의 몫일 뿐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개인의 능력, 환경, 주변의 네트워크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복지 제도가 새로 생겨도 이를 뉴스나 인터넷,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없는 사람은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령층, 저소득층, 이주민, 장애인 등입니다.

 

또한 많은 복지 신청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 큰 장벽을 느낍니다. 필요한 서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디에 제출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 결과,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몰라서 못 받는’ 사람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오히려 불신이 생깁니다. 어떤 이는 수십 가지 지원금을 빠짐없이 받는 반면, 어떤 이는 자신에게 해당하는 혜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갑니다. 같은 국민임에도 삶의 질은 점점 벌어지게 됩니다.

 

자동 지급은 답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엔 ‘자동 지급’ 혹은 ‘선별 지급’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세금 정보나 가족관계, 소득 자료 등을 활용해, 자격이 되는 국민에게는 별도의 신청 없이도 자동으로 혜택을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이 방식이 도입된다면 적어도 정보 격차로 인해 소외되는 문제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나 부처에서는 아동수당, 청년 지원금 등에서 자동 신청 안내나 선지급 시스템을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또 다른 쟁점이 등장합니다. 자동 지급을 하려면 행정기관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더 넓게,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나 정보 오남용의 우려가 제기됩니다.

 

정보는 곧 권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의 생활 수준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입장에서는 감시 사회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생깁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관점이다

신청주의가 완전히 나쁘다거나, 자동 지급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취약한 사람을 위한 별도의 안내 시스템, 동네 주민센터를 통한 대면 신청 서비스, 챗봇이나 ARS 등을 활용한 간편 안내 시스템 등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데이터를 활용하되, 투명하게 운영해야 합니다. 수집된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국민에게 선택권을 주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복지는 ‘신청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닿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을 중심에 두는 행정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나랏돈은 눈 밝은 사람이 찾아먹는다”는 말이 더 이상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제도는 바뀌어야 하고 관점은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공정이고,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