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있다.
대학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 진공관 앰프에 꽂혔던 적이 있다.
유난히도 반짝이는 진공관, 앰프 중심에서 은은하게 발광하던 그 따뜻한 불빛, 그리고 소리.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회로도를 구해 재료를 구하고, 납땜질을 해가며 진공관의 배치를 고민하던 밤들이 지금도 아련하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회로 진출하며 사업을 한답시고 바쁘게 세상살이를 시작하였고, 결혼도 하고, 삶이 바빠지면서 점점 진공관 앰프는 먼 구석으로 밀려났다.
관리도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었기에, 결국 30대 중반쯤엔 처리해버렸다.
‘언젠가는 다시 들일 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도 없이.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 날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상한 영상을 하나 추천해줬다.
유튜버 ‘인티고’님의 ‘가성비 1탑, 이게 마음에 안 들면 답 없다!’라는 제목의 진공관 앰프에 대한 사용정보였다.
한 번 클릭한 게 화근이었다.
감탄과 의심이 반반이었다.
“이 가격에 이런 소리가 난다고?”
영상 속 앰프는 분명히 내가 예전에 만들던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소리는 오히려 더 근사했다.
물론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내 귀가 그리 예민한 편도 아니고, 무엇보다 ‘소리를 대하는 자세’가 이미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최고’를 좇았다.
여러 허상과 같은 용어와 숫자에 집착하며 수백만 원짜리 기기들만 앰프로 인정하는 뭐 그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게 맞는 ‘적당한 온기’가 가장 좋다는 걸.
그 이상은 사치라는 것도.
그리고 그걸 알 나이가 되어서인지 저가앰프가 편하게 다가왔다.
브랜드는 Aiyima.
여러 제품을 비교해봤고, 후기도 좋았다.
기능도 딱 필요한 것만 있고, 무엇보다 기본기에 충실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그거다.
기본.
음악 감상의 즐거움은 고가의 장비가 아니라, 내 귀에 익숙하고 편한 소리에서 온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진공관이 은은히 빛나며 흘러나올 때 완성된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뭔가 둔탁한 소리 대신, 공간을 채워주는 따뜻한 음색. 그거면 충분하다.
스피커까지 포함해서 50만 원이 안 되는 예산으로, 나는 다시 오디오 시스템을 꾸리고 있다.
프리앰프 하나, 파워앰프 하나, 그리고 작지만 울림 좋은 스피커 하나.
많은 돈을 들이진 않았지만, 이번 선택엔 확신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음감, 내 목적, 내 시간. 그걸 고려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면, 시스템은 금세 덕지덕지 붙기 시작하고, 정작 음악은 사라진다.
이제 곧 주문을 넣을 것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릴 적엔 소풍 전날처럼 들떴다면, 지금은 봄날 햇살처럼 잔잔하다.
이번에는 ‘소리를 듣기 위해’가 아니라,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진공관 앰프를 들인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나에게 아주 충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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