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동네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 붙어 있는 대통령선거 벽보가 눈에 띕니다.
습관처럼 한 장씩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 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선거벽보에 기호 6번 후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는데, 뉴스를 보니 그 후보는 이미 사퇴했다더군요.
반대로, 기호 8번 송진호 후보는 실제로 출마했는데 벽보에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이거 뭐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권자의 권리라는 것이 정보에 기반해 행사돼야 한다면, 벽보에서 시작되는 그 첫 단추부터 삐뚤어진 셈입니다.
벽보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선거벽보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가장 쉽게 마주하는 정치 정보입니다.
각 정당, 각 후보가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오프라인 홍보 공간'이기도 하죠.
그러니 이 벽보가 보여주는 정보는 정확하고 시의적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후보 등록 이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인쇄와 부착이 진행되다 보니, 그 사이 후보자가 사퇴하거나 새로 등록된 경우 반영이 되지 않습니다.
선관위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요.
일정은 일정이고, 행정은 행정이니까요.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기호 6번은 벽보에 나와 있지만 실제론 없는 사람이고, 기호 8번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벽보엔 없는 사람’이라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건 마치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없는 책을 서가에 전시해놓고, 실제 읽을 수 있는 책은 책장에 꽂혀 있지 않은 것과 다름없지요.
벽보 한 장도 민주주의다
‘아니, 요즘 누가 벽보 보고 투표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SNS나 뉴스, 유튜브 영상을 통해 후보 정보를 접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디지털에 익숙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고령층 유권자에게는 벽보야말로 가장 직접적인 정보 채널입니다.
또 벽보는 나름의 상징성이 있습니다.
모든 후보가 똑같은 크기의 공간에 사진 한 장, 글 몇 줄로 자신을 드러내는 형식이니까요.
평등과 공정의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왜곡된다면?
일부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고, 또 어떤 후보는 실존하지만 '지워진 사람'이 됩니다.
유권자에게 온전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선거의 원칙이 이쯤 되면 휘청거리는 겁니다.
제도는 바꿀 수 있다
선거는 단 한 표의 선택으로 나라의 향방이 바뀌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가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선관위는 벽보가 시의적절하지 못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자 교체나 사퇴에 따른 ‘정보 수정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거 벽보가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QR코드 하나만 붙여도 벽보와 실제 후보 정보가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비용 문제?
선거 예산의 0.1%만 할애해도 가능할 겁니다.
결국 문제는 ‘의지’입니다.
유권자의 주권은 정보에서 시작된다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또 한 번 깨닫습니다.
선거는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공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개선해야 합니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이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벽보 하나쯤은 제때 정확하게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그 벽보, 과연 진짜 후보들이 다 담겨 있습니까?
빠진 후보, 없는 후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민주주의는 조용히 실종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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