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55세부터 맨눈으로 살아가는 이유
10대부터 시작된 안경과의 동행
나는 10대 초반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안경 쓴 아이가 드물었고, 안경은 성적 좋은 아이들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에게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창이자 나를 규정하는 어떤 표식이었다.
어른이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도 안경은 내 얼굴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습관처럼 쓰고 벗기를 반복했고, 시력이 나빠지면 더 두꺼운 렌즈로 바꿔가며 그렇게 살아왔다.
안경을 벗다
그러다 55세가 되던 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안경에 갇혀 살아야 할까?”
“조금 흐릿하면 안 되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안경을 벗고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낯설었다.
사물의 윤곽이 흐려졌고, 사람 얼굴도 가까이서나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시력은 나빠졌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덜 보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빠르게 읽고, 정확히 판단하길 원한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안경을 벗고 보니, 세상이 전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정보가 너무 많이 보이면 오히려 혼란스럽다.
사람의 표정, 세상의 속도, 지나가는 뉴스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했고, 그래서 마음이 지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보이는 만큼만 본다.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이 더 다정하게 느껴진다.
나를 덜 자극하고, 덜 흔든다.
맨눈으로 사는 법을 배우다
은퇴 후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했다.
도시에서라면 불편했을 맨눈의 시야가, 시골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글자가 흐릿해도, 꽃 이름을 몰라도, 풀잎과 바람이 말해주는 것들이 많다.
시골은 시력이 아닌 감각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사람의 얼굴도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단점보다는 따뜻함이 먼저 느껴진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유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보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 보이면 놓치는 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덜 보이니까 덜 걱정하고, 덜 보니까 더 여유로워진다.
그것이 내가 55세 이후 얻은 삶의 방식이다.
이제는 흐릿한 세상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노안이 오면 돋보기를 써야 한다고.
나는 그 반대로 간다.
조금 덜 보이더라도, 마음으로 본다.
마음이 느끼는 진짜 풍경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다.
55세에 안경을 벗은 그날 이후, 나는 진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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