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줄 수 있을 때만 사람들이 모이는 건 아닐까?’
줄 수 있는 게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정보나 인맥,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그것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무언가’라는 사실이다.
청년 시절엔 몰랐다.
사람들은 그냥 사람 자체를 좋아해서 함께하는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인생의 중반쯤 지나고 나니, 어느 장면에서 멈춰 서게 된다.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그때도 내 곁에 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줄 수 있을 때는 주변이 북적북적한다.
연락이 끊겼던 사람도, 어색해졌던 사람도, ‘요즘 어때?’라는 말로 다시 다가온다.
물론 진심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계산이 깔려 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이해타산이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니까.
다만, 착각하면 안 된다.
그걸 우정이나 사랑, 신뢰로 착각하는 순간 상처받기 딱 좋다.
더 흥미로운 건, 우리가 ‘진짜인 척’ 하는 능력에도 능숙해졌다는 사실이다.
겉으론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화려한 SNS 이미지로 위장한다.
마치 모든 걸 가진 사람처럼 꾸며낸다.
그런데 그런 포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고?
진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이 나지만, 가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신뢰하지 마라.
그 사람이 ‘내가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시기’에도 곁에 있다면, 그건 진짜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걸 탐해서 온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관계란 참 묘하다.
가까이서 보면 따뜻해 보이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그것을 줄 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다.
기꺼이 줄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이다.
하지만 주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운 일이라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사람의 진심은 포장지로 가려지지 않는다.
말은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행동은 결국 본심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진심은, 나 또한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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